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지

서로를 가득 채운다거나

아니면 먼지가 되어 버린다거나 할 수도 없었지

사실 이 두 가지에 무슨 차이가 있는지도 알 수 없었지

 

한 시절 자주 웃었고

가끔 강변에 앉아 있었다는 것뿐

 

그 사이 파산과 횡재와

저주와 찬사 같은 게 왔다 갔고

 

만국기처럼 별의 별 일들이 펄럭였지만

우리는 그저 자주 웃었고

아주 가끔 절규했지

 

철로가 있었고

노란 루드베티아가 있었고

발가락이 뭉개진 비둘기들이 있었고

가끔 피아노 소리가 들렸고

바람이 많았지

 

반은 사랑이고 반은 두려움이었지

내일을 몰랐으니까

곧 부서질 것 같았으니까

아무리 가져도 내 것이 아니었으니까

어떤 단어도 모두 부정확햇으니까

 

생각해 보면

너무 많은 바람, 너무 많은 빗물

이런 게 다 우리를 힘들게 했지

 

우리의 한숨이 너무 깊어서

우리는 할 일을 다 한 거 같았고

강변에서 일어나기로 했지

 

기뻐서 했던 말들이

미워하는 이유가 되지 않기

 

(허연, 이별의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