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인간의 본질은 처음부터 주어지지 않았다. 인간은 자신의 본질이 무엇인지 주어지지 않은채 우연히 이 세상에 태어났다. 우리가 능동적으로 우리 삶을 계획하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면에서 사르트르는 ‘인간은 이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라고 표현한다. 또한 사르트르는 인간의 본질이나 목적을 정해 줄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사르트르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실존주의자 알베르 카뮈는 ‘페스트’를 쓰면서 페스트가 인간 사회에서 수많은 고통과 죽음을 낳고, 심지어 죄없는 어린이도 죽어가는 모습에서 신이 있다면 무엇을 하고 있느냐 고 절규하는 주인공의 말을 통해서 신의 존재를 부인한다. 이렇게 인간이 목적이나 본질은 정해져 있지 않은채, 먼저 지금 여기에 실제로 존재(실존)하기에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고 얘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본질을 누가 만드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바로 여러분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여러분은 자유롭게 선택을 하면서 본질을 스스로 만들어가게 된다.

 

2.인간은 자유로운 존재

인간은 무한한 자유를 갖고, 무한한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오죽했으면 사르트르는 ‘인생은 B와 D사이의 C이다.’라고 하는가. (B:Birth, D:Death, C:Choice) 그런데 때로는 자유라는 것이 너무 버거워 자유라는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여러분이 고등학교에서 벗어나 처음 대학생이 될 때는 모든 것이 자유로워서 좋을 수 있다. 하지만 누구도 간섭해주지 않음이 좋지만은 않고, 자유 뒤에 따르는 책임감이 조금씩 두려워진다.

인류 역사에서 자유주의가 등장한 이후로 어째서 전체주의가 등장해 개인의 자유가 억압되는 쪽으로 흘렀는지 그 이유를 책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다시 말하면 자유를 누리는 것은 그만큼 쉽지 않고 버겁다. 어떻게 보면 남들이 선택해주는 삶이 편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선택에 대한 책임을 남에게 전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스로 선택한 것은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기에 그만큼 두려움과 불안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간은 자유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간은 자유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지만, 자유 그 자체는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유의 부조리), 사르트르는 인간은 자유라는 형벌에 처해있고, 자유 속에 던져진 존재라고 보았다.(피투적 존재)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인간은 자신에게 자유가 주어져 있음을 인지하고, 주체적인 선택과 결단에 따라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나가려고 해야 할 것이다. 삶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 기꺼이 책임을 질때 비로소 참된 실존을 회복할 수 있다. (그리고 이때 신에게 의지하지 않기에, 사르트르는 하이데거와 함게 무신론적 실존주의로 분류된다. )

“사람은 자유로우며 자유 그 자체이다. 신이 없다면 우리의 행위를 정당화해줄 가치나 질서를 우리 앞에서 찾지 못한다. …… 우리는 그 어떤 핑계도 갖지 못한 채 홀로 있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내가 인간은 자유롭도록 선고받았다는 말을 통해 표현하려는 것이다. 사람은 스스로를 창조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선고받은 것이요, 세상에 내던져진 이상 자신이 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 책임이 있기 때문에 자유로운 것이다.”

 

사르트르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