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기 위해서 많은 것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모두 돈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돈 버는 일에 대해 관심이 많다. 그러나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랑인데 사랑에 대해서는 돈 버는 데 들이는 것만큼 노력하지 않는다. 사실 사랑도 돈처럼 벌어야 한다. 사랑하는 능력도 돈 버는 능력처럼 노력해서 키워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랑을 그저 주어지는 천연의 자원쯤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지갑 속에 돈이 얼마 있나 챙기듯이 자신의 삶에 사랑이 얼마만큼 있나 챙겨보아야 한다. 나 자신에 대한 사랑, 내 가족에 대한 사랑, 내 이웃에 대한 사랑, 내 일에 대한 사랑 등 자신이 가진 사랑의 총량을 한번 헤아려보자. 지갑에 돈이 많으면 부자이듯이 마음의 지갑에 사랑이 많으면 마음의 부자이다.

사랑에는 여러 측면이 있다. 로버트 스턴버그는 사랑의 삼각이론에서 사랑에는 친밀감과 열정과 헌신이라는 세 가지 면이 있다고 말한다. 친밀감과 열정은 있으나 헌신이 없는 사랑은 '낭만적 사랑'이다. 친밀감과 헌신은 있으나 열정이 없는 사랑은 '우애적 사랑'이고 열정과 헌신은 있으나 친밀감이 없는 사랑을 '얼빠진 사랑'이라고 한다. 친밀감과 열정, 헌신의 세 가지 요소를 모두 갖추었을 때 비로소 '완전한 사랑'이 된다. 서로 가깝게 느끼면서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때로는 상대를 위해 헌신하는 마음, 그게 완전한 사랑이다. 누군가 사랑한다고 느낄 때 친밀감, 열정, 헌신의 세 가지 축이 서로 균형을 맞추어가고 있는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열정과 헌신은 있으나 친밀감이 없는 사랑은 스턴버그는 얼빠진 사랑이라고 했는데 아마도 짝사랑이 이러한 부류의 사랑에 속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성장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경험하는 짝사랑은 일면 가슴 아픈 사랑이기는 하지만 짝사랑에는 사랑을 연습하는 기능이 있다. 사랑하는 대상과의 친밀감이 없으므로 관계에 대한 책임 없이 혼자 사랑하면서 사랑을 마음껏 연습할 수 있는 짝사랑은 이성에 대한 사랑을 배우는 성장 과정 중의 하나이다.

한편 사랑의 세 가지 축 중에서 친밀감과 열정은 있으나 헌신이 없는 낭만적 사랑은 남녀 간의 사랑에 시동을 거는 역할을 한다. 일단 시동이 걸려야 차가 움직일 수 있듯이 사랑에도 시작이 있게 마련이다. 아마도 서로 매력을 느껴 열정적인 마음으로 친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두 사람으로 하여금 인생의 동반자로서 함께 사랑이라는 여행을 시작하도록 시동을 거는 것 같다.

그러나 달리는 차에 또다시 시동을 걸 수 없듯이 낭만적 사랑은 일단 시동이 걸린 후에는 큰 의미가 없다. 물론 어떤 이유로든 사랑의 시동이 꺼졌을 때 낭만적 사랑을 통해 재시동을 걸 수는 있으리라. 결혼 생활이 지루해질 때쯤, 오래전 연애 시절에 주고받은 사랑의 편지를 꺼내서 다시 읽어보면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지면서 젊은 시절의 풋풋한 마음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그러면서 또다시 열정적으로 사랑을 하 수 있는 에너지를 얻기도 한다.

반면 우애적 사랑은 달리는 차의 엑셀레이터 역할을 한다. 낭만적 사랑이 가지는 열정은 없지만 친밀감과 헌신의 마음으로 성실하게 하는 사랑이 우애적 사랑이라고 볼 수 있다. 낭만적 사랑으로 시작된 관계가 성숙한 사랑으로 갈 수 있도록 에너지원을 공급하는 것이 바로 우애적 사랑이다. 서로에 대한 친밀감과 헌신은 결혼 생활에 매우 필요한 덕목이기 때문이다.

우애적 사랑의 구성 요소인 친밀감과 헌신은 결혼 생활을 하면서 함께 경험하는 동지애적 사랑의 기본 골격을 이룬다. 그러나 열정이 빠진 친밀감과 헌신은 너무 오래되어 서로에 대한 사랑이 식어버린 연인처럼 삶에 생기를 불어넣지 못한다. 부부가 오랫동안 결혼 생활의 여러가지 과업들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데만 집중하다 보면 어느덧 서로에 대한 열정적 사랑이 사라지면서 삶의 생기를 잃어버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래된 결혼 생활에서도 서로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사랑의 삼각이론에서 말하는 열정이란 아마도 상대방의 존재 자체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호기심이 아닐까. 연애할 때는 열정적으로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을 가지다가 결혼을 하고 난 후에는 "이제 모든 것을 알아버렸다"는 듯 상대에 대한 관심을 접고 일상생활에만 치중한다면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사람도 사랑도 평생을 두고 성장하고 변화한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사랑 속에서 함께 성장하며 더욱 성숙한 사람이 되고 내면적으로 더욱 깊이 사랑하고 이해하는 성숙한 결혼 생활을 할 수 있다. 친밀감, 열정, 헌신이라는 사랑의 세 가지 축이 든든하게 구축되어야 안정감이 있고, 부부가 함께 성장하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어 갈 수 있다.

박미령, <결혼한다는 것>, 북에너지, 2015, 63~66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