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공양을 끝내고 석종사를 대가람으로 재건한 혜국 스님을 찾아 뵈었다. 열세 살에 출가해 오십 대 후반이 된 스님의 맑은 모습에서 범접할 수 없는 큰 힘이 느껴졌다. 살아온 법랍 사십여 년의 족적과 닮은 듯 짙은 눈썹이 인상적이었다.

내려간 김에 취재를 요청할까 하다가 묵언 중이시라고 들어서 그만두었는데, 스님께서 말문을 여셨다.

"내가 스물 두 살에 성철 스님과 여러 가지 얘기 끝에 하루 오천배씩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서 절을 했죠. 그때 이런 생각이 듭디다. '이렇게 절을 여러 번 한다고 되려나? 한 번 하더라도 참절을 해야 할 텐데......' 하고 말입니다. 그랬는데 하루 오천배씩 하면서 십칠 팔 일이 지났을 때였어요.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생각하던 감정이나 번뇌를 가진 나는 거의 없고 절하는 놈만 남아 있는 거예요. 지금 생각하면, 한 번의 참절을 하기 위해서 만 번의 헛절을 해야 했던 거죠. 만 번의 헛절을 하지 않으면 한 번의 참절을 못하는 겁니다. 붓글씨도, 가만히 앉아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명필이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연습을 많이 해야 명필이 되는 게 세상사 진리입니다."

말씀을 듣던 중 일행에게 대접하기 위해 차를 달이는 스님을 바라보다가 무심히 눈길이 손에 닿았다.

박원자. <인생을 낭비한 죄>, 김영사, 2013, 285~2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