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독감에 걸린 것처럼 열로 들끓던 8월초에 나는 실연했다. 당시 내겐 단 하나의 희망만이 있었다. 되돌려놓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 그 희망을 놓고는 살아갈 수 없었다. 그때 나를 버린 사람 이름이 뭐였더라. 지민인가, 주민인가. 더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걱정과 연민을 건네다가 결국 지겨워하며 이제 제발 그만하라고, 차라리 죽어버리라고 매서운 말을 쏟아내던 사람에게 그 해 겨울이 끝날 때까지 매달렸다. 나는 헤어지고 잊는 방법을 몰랐다. 지금은 아는가? 모르겠다. 사랑이나 이별에 어떤 방법이 있다고 생각할 수 없다.

매일 밤 혼자 술을 마시게 되면서 지민인지 주민인지를 찾지 않게 되었다. 만취하면 어둠처럼 고요히 가만히, 시간을 죽일 수 있었다. 주민인가 지민인가를 열망하지 않게 된 뒤에도 만취해야 잠드는 버릇은 흉터처럼 남아 나의 일부가 되었다. 기억을 잃는 밤이 잦아졌다. 다음 날 오후까지 두통과 메스꺼움에 시달렸다. 밤이 되면 다시 술을 마셨다. 그런 중에도 해야 할 일을 빠짐없이 했다. 써야 할 글을 썼고 약속을 어기지 않았다. 윤리적으로 말하고 행동했다. 가족과 친구들의 대소사나 생일도 잊지 않고 챙겼다. 멀쩡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고 안부를 물었다. 아무도 내가 알코올중독자라는 걸 몰랐다. 나는 내게만 실수하고 잘못했다. 내게만 비윤리적이었다.

 

 

<인생은 언제나 무너지기 일보 직전> 중 최진영, <XOXO>, 253~254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