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뷔시는 문학과 음악의 통합을 위해 전통에서 벗어난 새로운 음악 언어를 만들었다고 했잖아요. 그럼 그림과 음악의 통합은 어떤 방식으로 했어요?" 지선이 물었다.

"드뷔시는 낭만주의 음악가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음악과 문학의 통합을 이루었다고 했잖아. 이와 마찬가지로 드뷔시는 회화에 대한 감상만을 음악으로 표현한 것이 아니야. 단순히 회화에 대한 느낌이나 감상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서. 음악으로 그림을 그리려 한 거지. 음악은 기본적으로 시간예술이잖아. 음악의 가장 본질적 요소인 멜로디는 시간의 흐름을 따라 우리에게 전달되니까. 드뷔시는 이러한 시간적 예술개념에 시각적 요소를 첨가하는 혁명적 방법을 선택했지."

지선의 얼굴이 잔뜩 궁금한 표정을 짓고 있다.

"소리로 어떻게 그림을 그릴 수 있어요?"

"화성으로 그림을 그리는 거야! 화성이 뭔지 알지?" 김 교수가 지선에게 물었다.

"음... 코드 아니에요? 기타 칠 때 사용하는 Am, C7 같은 코드요...."

지선이 약간 자신 없이 대답했다.

"맞아. 기타 코드는 여러 음이 동시에 모여 있는 거잖아. 음들의 조합에 따라 Am, C7 같은 코드 이름이 붙는 거고. 이처럼 화성(또는 화음)이란 높이가 다른 두 개 이상의 음들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을 뜻해. 이 화음들이 조화롭게 들릴 수 있도록 화성법이라는 음악적 규칙이 존재한단다. 우리가 쓰는 말에 문법이 있는 것과 같은 이치야."

지선은 화성이라고 하니 왠지 까다롭게 들렸다고 말하면서 깔깔깔 웃었다.

"이론적으로는 딱히 설명할 수 없어도 우리는 음악을 들으면 대부분 끝나는 지점을 알아차릴 수 있잖아. 그것은 바로 대부분의 곡은 기능화성이라는 음악적 문법으로 작곡되기 때문이야."

"기능화성이 뭐지요?" 지선이 물었다.

"기능화성이란 각각의 화성에게 고유의 기능이 부여되는 거야. 으뜸화음. 버금딸림화음, 딸림화음 등이 대표적인 기능을 수행하지. 이 중에서 으뜸화음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 대부분의 음악은 으뜸화음에서 시작해서 으뜸화음으로 끝나거든. 예를 들면, 다장조의 으뜸화음은 도-미-솔로 이루어져. 따라서 다장조의 노래는 도-미-솔 중의 한 음에서 시작해서, 도-미-솔 중의 한 음으로 끝나게 돼. 어린 시절 학교에서 배웠던 동요를 적용해 보면 쉽게 이해가 갈 거야. '젓가락' 노래를 생각해봐. 계이름이 '미솔 도미솔 라라라 솔 / 파파파 미미미 레레레 '로 되어 있잖아. 시작이 '도'. 끝나는 음도 '도'지? 이처럼 우리는 어릴 적부터 이런 기능화성으로 이루어진 음악을 교육받았지.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기능화성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거야. 서양음악에서 이러한 기능화성이 성립된 것은 17세기 바로크 시대부터란다."

지선의 눈이 놀라움에 휘둥그레졌다. "그렇게 오래된 관습이었어요? 400년이네요!"

"그렇지. 드뷔시는 음으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그렇게 오래된 관습을 과감히 무너뜨린 거야. 그러니까 다장조의 음악이 꼭 '도'에서 시작해서 '도'로 끝나지 않게 되는 거지. 더 나아가서 드뷔시는 다장조라든가, 라단조 등과 같이 장조, 단조 개념마저 무너뜨리게 돼. 드뷔시는 화성에 부여된 고유의 기능을 무시하고 대신 화성들을 물감처럼 취급했어. 마치 화가들이 팔레트 위의 물감들로 색채를 표현하듯이 자유롭게 화성들로 음악에 색을 입혀나간 거지. 아까 칸딘스키가 색으로 음악을 표현하려 했다고 했잖아. 스크랴빈은 음으로 색채를 표현하려 했고 말이야. 드뷔시는 더 나아가서 음으로 그림을 그려나간 거지."

지선은 음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생각에 무척 흥미를 느낀 듯했다. 연이어 "드뷔시는 화성으로 색을 표현하는 것 외에 또 어떤 방법으로 그림을 그렸지요?"라고 물었다.

"정말 드뷔시는 알면 알수록 천재 음악가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어! 그는 '음악적 원근법'을 고안해 냈단다. 회화에서 원근법이란 2차원 평면에 3차원 공간을 표현하는 거잖아. 즉, 평면 위에 거리감과 깊이감을 주어 입체적인 표현을 하는 미술 기법이지. 드뷔시는 자신의 음악에 이런 원근법적인 표현을 적용한 거야. 회화에서 색채를 그라데이션하는 것처럼 음량을 단계적으로 조절하거나 지시어 사용, 음역대를 이동하는 방법 등을 사용했지."

"정말 놀랍네요! 이런 드뷔시 음악을 막연히 감정으로만 다가가려고 했으니 지루하게만 느껴질 밖에요." 지선이 말했다.

"드뷔시는 색채감과 원근법적인 표현 외에도 선율의 윤곽으로 대상을 직접 그려내기도 했단다. 나는 이것을 '악보의 회화화'라고 부르고 싶어. 드뷔시의 피아노 모음곡인 『영상 1집』 중 첫 곡인 <물의 반영>에서는 선율의 윤곽선이 반원형을 그리고 있어. 이는 물 위에 떨어진 나뭇잎으로 인해 생기는 파문의 형태를 그려낸 거지. 프렐류드 <아마빛 머리의 소녀>에서는 선율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고 있어. 변덕스러운 소녀의 마음을 암시하기 위해서야. 그런가 하면, 프렐류드 <가라앉은 사원>에서는 시작과 절정을 거쳐 끝맺음하는 전체적인 음악적 구성이 아치형으로 되어 있단다. 바로 대사원의 건축물을 그린 거야. 이런 악보의 회화화는 드뷔시 음악 전반에 걸쳐 무수히 발견할 수 있어. 상징주의 시인인 말라르메가 리듬의 시각화와 시의 악보화를 실현한 것처럼, 드뷔시는 음악으로 악보의 회화화를 이루어낸 거지."

김석란, <두근두근, 드뷔시를 만나다>, 올림, 2020, 62~66p